[실험] 명찰에 별명 적어보기

기술 밋업의 또 다른 묘미, 알콜 네트워킹

기술 밋업은 단순히 기술만 익히고 기념품을 받아가는 행사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특정 주제를 놓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 같은 시간대에 모인다는 특징 때문에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의 시행착오나 나의 경험을 서로 나누고 싶어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그러하듯 기술 밋업에 참가할 때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가는 관계로 혼자 가는 일이 많고,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한 한국인의 특성 상 밋업이 끝난 후의 맥주 파티나 뒷풀이에 그리 선뜻 몸을 섞기가 쉽진 않습니다. 용기를 낸다고 하더라도 운영진이나 발표자를 중심으로 모이다보니 사람 간의 관계가 1:다 관계가 되어 pub / sub  관계의 채널만 형성되거나 관련 영업 담당자에게 명함을 남김으로써 이벤트 드리븐 형태의 단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간혹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난데없이 말을 걸어 상대의 AT 필드를 중화시켜 들어가는 경우도 간혹 드물게는 있긴하지만 대부분의 나홀로 참가자는 맥주의 힘을 빌어서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데브맥스포스터A
출처: 티몬의 개발 이야기 http://tmondev.blog.me/220448372647 (혹시 이분 허니몬?)

무알콜 네트워킹의 가능성을 고민하다

나 자신과 상대방의 AT 필드를 중화시키는데는 알콜만한 것이 없지만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참가자들이 음주가 가능한 성인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IT 바닥에 일찍 발을 들여놓는 고등학생 개발자나 아재들과의 술자리를 피하고 싶은 여성 개발자도 있을 수 있고 성인 남자 개발자라고 하더라도 건강 상의 이유로(이미 통풍을 앓고 있거나) 술을 멀리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무알콜 네트워킹이 가능한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이 때 쉽게 등장하는 것이 소위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는 것입니다. 국내에 아직 전문적인 ‘퍼실리테이션’이라는 분야가 생소할 때는 통기타와 게임으로 풀어주는 ‘레크리에이션’이 이런 역할을 대신해주었는데 이러한 방식의 단점은 누군가 나서서 흐름을 주도해줘야하고 참여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조금은 어색한 자기 표현을 하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밋업 특성 상 세션 듣고 화장실 가고 커피 타임에 줄서서 커피 마시고 쿠키 집어오고 경품 추첨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쁜 사람들에게 과연 효과적인 아이스 브레이킹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소속과 이름말고 하나만 더 적어봅시다

보통 밋업이나 콘퍼런스에 참가할 때는 사전 신청 시 개인 정보를 입력하게 되고 이 정보는 영업이나 홍보 등의 목적으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밋업 참가자들 사이에서 노출되는 정보는 소속과 이름 두가지 정보에 불과합니다. 사실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이것이 올바른 방법이고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보만 가지고는 사람들끼리 말을 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걸리버정보통신 이동식: 아,  KOF소프트 다니시나봐요?
  • KOF소프트 장거한: 아, 네….
  • 걸리버정보통신 이동식: 거기 김갑환 과장님계시죠?
  • KOF소프트 장거한: 아… 저희가 회사가 커서 이름만으로는 잘 모릅니다.
  • 걸리버정보통신 이동식: 아, 네….

소속과 이름만으로는 말을 붙이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좀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잘생겨서요‘, ‘너무 예뻐서요’와 같이 상대를 칭찬하면서 접근하면 작업꾼으로 오해를 받거나, ‘기가 총명하시네요,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포교 활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상대의 AT  필드를 강화시키는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적의 효과를 내기 위해 여기에 정보를 하나만 더 추가해보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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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이구나… 알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가장 쉬운 예는 소속 내에서의 역할입니다. ‘CTO, 이사, 책임 연구원’과 같은 실제 조직 내에서 사용하는 역할을 표시해도 되고 ‘웹 개발자, 서버 운영자, 테스터’와 같이 실무가 어떤 것인지 유추 가능한 정보라도 좋습니다. 이런 정보가 너무 사무적이라고 생각된다면 ‘스칼라 초심자, 튜닝 전문가’와 같이 내공의 수준을 표현하여 도움을 구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음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외에도 아예 목적 의식을 가지고 ‘모태솔로 개발자, 디자이너 급구, 사장님이 미쳤어요’와 같이 구인, 구직 메시지를 담는 것도 대화를 쉽게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 셋별전자 발 개발자 이봉주: 어, 입 개발자시네요. 전 발 개발자인데…
  • 무도앤컴퍼니 입 개발자 노홍철: 네, 음성 인식 기술이 좋아져서 제가 좀 살 것 같습니다. 혹시 봉주님은 축구할 때도 개발이십니까?
  • 둘다: 핫핫핫핫핫… (죽일까?)

이런 어색하지만 특별한 목적 의식없이 가벼운 농담으로 짧은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다음에 또 다른 밋업에서 우연히 만날 때에는 가볍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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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에는 꼭 장을 봐야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바쁜 업무에 개인 시간도 내기 어려운 엔지니어들에게는 밋업이나 콘퍼런스는 가끔씩 열리는 시골 장날과도 같습니다. 굳이 꼭 뭘 사고 팔 생각이 아니더라도 유랑 극단이나 엿장수 구경하듯이 참여할 수 있고 ‘김영감네 막내 아들 용팔이 있다아이가… 가 친구가 키우는 소가 어제 송아지를 낳았다카더라’와 같은 업계 소식도 접할 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보이지 않는 큰 목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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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감: 난 이번에 고추 농사 다 망쳤는데, 자네 괜찮은가?
  • 박영감: 우린 그래서 이번에 농약 한번 바꿔봤다네.
  • 김영감: 나도 자네 샀던 그 농약 썼는데도 그러는데?
  • 박영감: 어허, 그게 물 타는 거랑 아침, 저녁 언제 주느냐에 따라 다르더라구.
  • 김영감: 자네, 그건 어떻게 알았나?
  • 박영감: 농업 기술원에서 사람이 나와서 알려주더군.
  • 김영감: 그 사람, 나도 한번 봅세.

농업 기술원에서 오신 분이 컨설턴트인지, 아키텍트인지, 절정 고수인지, 코드 리뷰어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밋업에서 만난 분들끼리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찾고 서로의 노하우와 시행 착오를 공유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이 re:View가 바라는 이상적인 밋업입니다.

인위적으로 신경계를 마비시키지 않고, 굳이 시간을 들여 조금은 어색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지 않더라도 소속과 이름이라는 2개의 정보에서 나 스스로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정보를 하나만 더 추가한다면 3개의 정보에서 발생하는 대화 가능성의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고 화장실을 오가는 짧은 순간에 서로의 피처를 간파하고 말을 붙일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re:View의 가설이자 실험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OO회사 / 한물간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뒷방 코드 리뷰어, 생계형 친일 IT 서적 번역가, 무정부주의 IT 레지스탕스 OOO입니다.


이 사람은 왜 자신을 한물 갔다고 생각하는지, 왜 뒷방에 있다고 말하는지, 사드 때문에 주식이 폭망해서 생계가 위태로운지, 또 왜 자신을 친일 번역가라고 하는지(아하, 이 사람… 영어를 못…), 무정부주의는 무슨 뜻인 줄 알고 갖다 붙여 쓰고 있는지 등등… 이야기할 소재는 이미 넘칩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관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써 넣는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관심을 끌 수는 있을 것이고 보는 사람이 정상적인 유머 감각이 있다면 써 있는대로 곧이 곧대로 그렇게 믿지는 않을테니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약간의 허풍은 글루타민산 나트륨 처럼 살짝 곁들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메뚜기

정하셨나요? 여러분을 표현하는 또 다른 이름

그런 이유에서 re:View의 밋업에선 명찰에 여러분이 원하는 별명을 더 넣어드립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불러주면 좋을까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요?
그들이 나를 불러줄 때마다 나는 그 모습에 한걸음씩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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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정하셨나요?
이제 re:View에 말해주세요.
여러분의 이름은…?


re:View에서는 참가자가 확정되면 신청 시 기재한 이메일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별명을 여쭤봅니다.
이미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분에게는  re:View에서 정한 별명을  디폴트로 설정하여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다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반드시 오버라이딩해서 알려주셔야 합니다. 기본으로 설정되는 값은 자신이 원하는 피처가 아닐 수 있으므로 꼭 확인하시고 원하시는 것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몇 가지 예시입니다.

  • IT계의 육식 스님
  • 광화문의 불꽃 언니
  • 높은 그의 삶의 질

벙어리도 말문이 트이게 한다는 신비의 마법을 여러분께 걸어드리겠습니다.

오늘도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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